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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Info.
전시정보
전시 정보
Galleries Association of Daegu
갤러리 오모크
  • Date.
    2025. 11. 1 – 2025. 12. 29
  • Title.
    Good Morning
  • Artist.
    심윤
  • Address.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366
  • Tel.
    054-971-8855
  •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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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Morning 2025 Acryliv on canvas 150.0 x259.0 cm



 


이정민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심윤의 회화는 무성영화를 닮았다. 소리 없는 흑백 화면이 오직 이미지로 이야기와 감정을 전하듯, 색을 덜어낸 그의 화면은 오히려 더 깊고 진한 정서를 머금는다. 이번 전시 굿모닝은 매일 반복되는 인사에 반어처럼 응답한다. ‘좋은 아침이라는 상투적인 말은 타인을 향한 인사라기보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조용한 주문에 가깝다. 작가는 그 밝은 인사 너머에 가라앉은 몸과 마음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심윤은 고대 조각상, 신화 속 인물, 동물의 형상을 빌려 현대인의 신체와 교차시킨다. 그렇게 일상의 장면은 극적인 전개를 맞이하며, 현실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의 몸을 회화 속 서사에 밀어 넣음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불안과 피로, 정체성의 균열을 신체와 상징의 언어로 담아낸다. 그중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넥타이를 맨 남성이다. 정장과 넥타이, 비즈니스 가방 같은 도시적 삶의 상징들은 그의 화면에서 속박의 장치로 바뀐다.


이번 신작들 역시 현대인의 초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한층 더 짙어진 자전적 감정이 배어 있다. 업무와 사투를 벌이는 군상, 해골과 함께 잠든 남성, 도시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는 익명의 존재들, 그리고 세상의 무게를 홀로 떠받드는 인물까지. 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현실을 견디고 있다. 그리고 사회 시스템 속에서 점차 소진되어 가는 몸의 서사를 드러낸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점은 시선이다. 대부분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거나 아예 등을 보인 채 우리 앞에 서 있다.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조용히 버티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Way to Work은 좌우로 길게 펼쳐지는 파노라마 구성을 통해, ‘일상이라는 전장을 통과하는 현대인의 풍경을 가로 15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스케일로 담았다. 그러나 화면 속 인물들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그들은 중심을 잃은 채 끌려가고, 내동댕이쳐지며, 얽매이고, 겨우 버틴다. 비틀린 몸, 돌아간 고개, 맨발, 날개, 사슬이 얽힌 장면 속에서 우리는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존재들을 마주한다. 심윤은 줄곧 그런 견디는 자들을 그려왔다.


이번 신작에는 해골과 토르소가 새롭게 등장한다. 작가는 생존과 소진이 교차하는 삶의 리듬을 보다 직접적으로 시각화한다. 해골은 누구나의 피부 아래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실체이며, 바니타스(Vanitas) 전통에서 삶의 유한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기호다. 그러나 심윤은 이를 단순한 죽음의 상징이 아닌, 피로에 물든 일상의 감각으로 연결한다. Wake Up에서는 가죽 소파에 기대 잠든 남성의 어깨너머로 해골이 조용히 입김을 불어 넣는다. ‘일어나!’라는 속삭임은 마치 삶의 그림자처럼 다가와 그의 몸을 감싼다. 그 모습은 두려움보다는 위로에 가까운, 기묘한 병치를 이룬다.


토르소는 고전 조각을 연상시키는 단단한 형상이지만, 작가는 이 긴장된 상체를 통해 신체가 떠안은 현실의 무게를 표현한다. 구조적으로는 완결된 듯 보이나, 실은 결핍된 채로 존재하는 토르소는 온전한 인체가 아니다. 그는 이 단절된 신체를 주체성의 부재로 읽으며, 고전 조각의 전통에 기대면서도 불완전한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낸다.


또한 작가가 오래도록 주목해 온 신체의 장소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 속 자신의 등을 가장 먼저 마주한다고 말한다. 아직 풀리지 않은 어깨와 등에는 어제의 피로와 오늘의 무게가 함께 얹혀 있다. 등은 가장 먼저 지치고 가장 늦게 회복된다. 말 없는 감정과 기억의 표면이자, 버티는 자아의 은유이기도 하다. 심윤의 회화에서 표정보다 등과 근육이 더 중요하게 그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의 표현처럼 감춰진 감정이며 고통의 윤곽인 등은, 스스로도 들여다볼 수 없는 자아의 무의식이자, 피로와 기억이 축적되는 몸의 아카이브.


Winter에서는 그 등마저 두툼한 외피 속에 감춰진다. 감정의 통로이자 가장 내밀한 뒷면이었던 등은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채 조용히 숨는다. 이 비가시성은 침묵과 고립, 그리고 내면의 봉인 같은 감정을 불러온다. 그의 감긴 눈도 마찬가지다. 피로의 징후이자, 등을 돌린 몸처럼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일종의 처방으로 말이다. 동시에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하루를 온전히 작업에 쓰고 싶은 열망과 생계를 위한 현실 사이에서, ‘감긴 눈은 그 간극을 묵묵히 견디는 몸짓이 아닐까.


 


심윤의 회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리느냐못지않게 어떻게 그리느냐이다. 작업 방식과 도구, 매체의 선택과 변화는 그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는 열쇠다. 초기에는 붓과 유화물감을 사용해 흑백 톤으로 사물과 인물을 대형화하며, 이미지가 지닌 고유한 힘을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2013년부터 에어브러시를 조금씩 병행하기 시작했으며, 2018년 이후 그 비중을 크게 늘렸다. 2022년 하반기부터는 에어브러시만을 사용하는데, 이는 유화에서 아크릴로 완전히 전환한 시점이기도 하다.매체의 물성 변화는 작업의 리듬을 바꾸어 놓았다. 유화가 시간의 축적을 요하는 매체라면, 아크릴은 보다 빠른 응답과 반복적인 레이어링을 가능하게 해, 작업 속도 면에서 유리할 뿐 아니라, 더욱 민첩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에어브러시 사용에 있어, 아크릴 도료와 미디엄의 비율 조정을 핵심으로 꼽는다. 너무 묽으면 색이 흘러내리고, 반대로 진하면 분사되지 않거나 노즐이 막히기 쉽다. 지금의 섬세한 안료 층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미세한 조정의 결과다. 이는 도구에 대한 숙련도를 넘어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찾아가는 절실한 과정이었다.


한편, 에어브러시는 공기처럼 얇은 입자를 분사하는 도구다. 작업 중에는 늘 화학 입자가 공기 중을 떠다니고 흡입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는 방독면을 착용한다. 육체적 감수와 긴장을 수반하는 행위다.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며, 그는 안료의 층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화면 속에 조용히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쩌면 방독면 속 고립된 시간이야말로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가장 순수한 창작의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그의 회화는 형식과 내용, 도구와 감정, 이미지와 시간 사이의 긴장을 실험하고 조율해 온 과정이다. 다시 말해, 기법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방식자체가 곧 회화가 된다. 그렇게 오늘의 자화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상투적 인사에 눌려 있는 아침의 무게, 그리고 그 무게를 매일 같이 견디는 존재들을 향한 조용한 인사다. 과장된 구도와 상징이 화면을 채우지만, 그의 회화는 결코 거창한 서사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장의 형식을 빌려, 일상의 작은 틈과 평범해 보이는 아침의 균열을 개성 있게 보여준다.


오늘도 이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까. 심윤은 그 질문 앞에 선 이들을 그린다.


등을 돌리고, 눈을 감은 채,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또 하루가 밝았다.


 



 


오늘도, 굿모닝!